
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그 생각만 하고 계실 거예요. 버스나 지하철에서 멍하니 창밖 보다가, 오늘은 꼭 써야지 하면서 집에 들어가는데 막상 앉으면 또 첫 문장이 안 나오고요. 반성문 예시라고 검색해서 여러 개 읽어 보셨을 거예요. 그런데 다 읽고 나서도 막막한 건 똑같으셨죠. 예시는 예시고, 내 얘기는 거기 없으니까요.
그게 정상이에요. 예시문은 남의 상황으로 쓴 거라, 아무리 잘 쓴 예시여도 내 일에 그대로 맞을 수가 없어요. 그걸 억지로 내 상황에 끼워 맞추려니까 더 안 써지는 거예요. 예시를 베끼려고 하면 할수록 첫 문장이 더 멀어져요.
게다가 예시문은 다 너무 잘 쓰여 있어요. 문장도 매끄럽고 말도 그럴듯하고요. 그걸 보다 보면 나는 저렇게 못 쓰겠다 싶어서 오히려 더 위축돼요. 글 잘 쓰는 사람이 쓴 예시랑 내 글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 거죠. 그런데 반성문은 글솜씨로 보는 게 아니에요. 문장이 좀 투박해도, 그 안에 진짜 본인 얘기가 들어 있으면 그게 매끄러운 예시문보다 나아요. 잘 쓰려고 하지 마시고, 솔직하게 쓰는 게 먼저예요.

지난주에 통화로 이야기를 나눈 분이 계셨어요. 그분도 예시를 열 개는 넘게 읽으셨대요. 그런데 읽을수록 더 막막하다고 하셨어요. 다들 비슷하게 잘못했습니다, 깊이 반성합니다, 이렇게 시작하는데 본인은 그렇게 쓰는 게 영 어색하다고요.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. 그 첫 문장을 예시에서 가져오려고 하지 마시라고요.
그러고 나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냥 저한테 얘기하듯 말씀해 보시라고 했어요. 그랬더니 한참을 풀어놓으시더라고요. 그날 왜 그렇게 됐는지, 지금 와서 뭐가 제일 후회되는지. 다 듣고 제가 그랬어요. 방금 하신 그 첫마디, 그게 반성문 첫 문장이라고요. 예시에 있는 문장이 아니라, 본인 입에서 나온 그 말이요.
그분이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. 살면서 반성문이라는 걸 처음 써 본다고요. 학교 다닐 때 말고는 써 본 적이 없어서, 형식이 따로 있는 건지 분량은 얼마나 되는 건지 그것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. 그래서 예시를 그렇게 많이 찾아보신 거였어요. 틀이라도 알고 싶으셔서요. 그 마음 충분히 이해돼요. 처음 하는 일은 뭐든 막막하니까요. 그런데 반성문은 정해진 틀보다 그 안에 무슨 말이 들어 있느냐가 훨씬 중요해요. 형식은 거들 뿐이에요.
첫 문장이 안 나오는 건 글을 못 써서가 아니에요. 어떻게 시작하는 게 맞는지 정답을 찾으려고 하셔서예요. 그런데 반성문 첫 문장에 정답은 없어요. 그날 일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 마음, 그걸 그대로 적으면 그게 첫 문장이에요. 멋있게 시작하려고 안 하셔도 돼요.

순서를 바꿔 보세요. 첫 문장부터 쓰려고 하지 마시고,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적으세요. 시간 순서대로, 있었던 그대로요. 그걸 쭉 적고 나면 첫 문장은 오히려 나중에 자연스럽게 나와요. 제일 어려운 걸 제일 먼저 쓰려니까 막혔던 거예요.
그다음에 그 일이 왜 잘못이었는지를 적으세요. 여기서 많은 분들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시는데, 그건 잘못을 안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사과를 되풀이하는 거예요. 그것보다 그 일 때문에 누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, 본인 행동이 뭘 잘못 건드린 건지를 적으셔야 해요. 그게 들어가야 진짜 반성한다는 게 보여요.
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를 쓰세요.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막연한 말 말고, 구체적으로 뭘 바꿀 건지요. 작아도 구체적인 한 가지가 막연한 다짐보다 훨씬 믿음이 가요.
손으로 써야 하나 고민하시는 분도 많아요. 글씨에 자신이 없어서 컴퓨터로 치고 싶은데, 그러면 성의 없어 보일까 걱정되시는 거죠. 손으로 쓰면 그 시간 동안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니까 자필을 권하는 편이긴 해요. 그런데 읽기 힘들 정도로 글씨가 안 좋으면 오히려 컴퓨터로 또박또박 친 게 나아요. 중요한 건 글씨가 아니라 내용이니까, 거기에 너무 매이지 않으셔도 돼요.
예시를 아예 보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. 어떤 식으로 쓰는지 흐름을 참고하는 정도는 괜찮아요. 다만 거기 있는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면, 읽는 사람은 금방 알아요. 어디서 본 듯한 글이 되거든요. 흐름만 참고하고, 내용은 본인 일로 채우셔야 해요.

오늘 당장 다 쓰려고 안 하셔도 돼요. 오늘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, 그것만 떠오르는 대로 적어 보세요. 첫 문장은 아예 신경 쓰지 마시고요. 그것만 적어도 절반은 넘으신 거예요. 나머지는 며칠에 걸쳐 천천히 채우셔도 괜찮아요.
여기까지 읽으셨는데도 막상 빈 화면 앞에 가면 또 첫 문장이 안 나올 수 있어요. 그게 글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, 본인 일이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본인이 제일 판단하기 어려워서 그래요. 너무 가까이 있는 일이라 그런 거예요.
그럴 때 옆에서 같이 정리해 드릴 수 있어요. 그날 있었던 일을 한번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, 그 안에서 첫 문장이 될 만한 말이 뭔지, 어떤 순서로 쓰면 좋을지 같이 잡아 드려요. 혼자 며칠 예시만 들여다보셨던 걸, 통화로 가닥을 잡으시는 분들이 많아요. 지금 더 혼자 막막해하지 마시고, 편하게 연락 주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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