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아이 일로 며칠째 잠을 설치고 계실 거예요.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났는데, 며칠 지나니까 이제 상대 쪽 부모님께 한 장 보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드셨어요.
그래서 검색을 해 보셨어요. 피해 학생 부모님께 사과문이라고 쳐 보셨고요. 글이 몇 개 나오긴 했어요. 다 비슷비슷하고, 어쩐지 내 얘기 같지가 않아요. 그대로 베끼자니 마음에 안 차고, 안 보자니 첫 줄을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고요.

종이를 펴 놓고 며칠째 펜만 들고 계신 거죠.
왜 첫 줄이 안 써지냐면
지난주에 비슷한 일로 전화 주신 분이 계셨어요. 중학생 딸 일로 상대 부모님께 사과문을 보내셔야 하는 어머니였어요. 통화로 한참을 우셨어요. 그러다 그러시더라고요. "그 부모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부족한 것 같아서, 입이 안 떨어져요."
그 말씀 하시고 또 한참 말이 없으셨어요.
사과문이 안 써지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가 같이 와요. 하나는, 상대 부모님 마음을 생각하면 어떤 말도 가벼워 보여서예요. "죄송합니다"라고 쓰면 너무 짧고, 길게 쓰자니 변명 같고요. 어느 쪽으로 글을 끌고 가도 부족한 것 같아서 첫 줄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.
또 하나는, 우리 아이 얘기를 어디까지 써야 할지 모르시는 거예요. 우리 아이가 왜 그랬는지를 쓰면 변명 같고, 안 쓰면 진심이 안 보일까 싶고요. 그 사이에서 결정이 안 돼요.

우리 아이 얘기 말고, 상대 아이부터 떠올려 보세요
종이를 잠깐 옆에 놓으세요. 거기에 양식 흉내 내지 마시고, 우선 한 가지만 생각해 보세요. 상대 아이가 이번 일로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요. 그 아이가 학교에서, 집에서, 잠자리에서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떠올려 보세요.
이걸 글로 쓰시라는 게 아니에요. 사과문을 쓰기 전에, 부모로서 그 아이 입장에 한 번 가 보시라는 거예요. 그렇게 한 번 다녀오시면, 첫 줄이 달라져요.
전화 주셨던 그 어머니도 통화 중에 그 얘기를 하시다가 또 우셨어요. 그러다 한 문장이 나왔어요. "그 아이가 학교 가는 길이 무거웠을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." 그 한 줄에서 사과문이 시작됐어요.
그 한 줄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어요. 근데 상대 아이를 한 번 떠올리고 나면 첫 문장이 잡혀요.
그다음은 우리 아이 얘기인데, 길게 쓰지 마세요. 우리 아이가 어떤 상황이었고 어떻게 이번 일이 생겼는지를 짧게요. 변명이 안 되게, 그냥 사실만 적으세요. 그리고 부모로서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, 앞으로 집에서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겠다는 걸 짧게 붙이세요.

마지막엔 상대 부모님께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보내드리는지 한 줄 적으세요. 거창한 약속 말고, 죄송한 마음이 담기게요.
자필이냐 워드냐
학부모 사과문은 자필로 쓰시는 게 일반적이에요. 글씨가 좀 못나도 괜찮아요. 한 자 한 자 손으로 쓰신 게 의미가 있어요. 글씨가 너무 알아보기 힘드시면, 워드로 쓰고 마지막 서명만 자필로 하셔도 돼요. 둘 다 쓰입니다. 분량은 한 장에서 한 장 반이면 충분해요. 길게 쓴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.
오늘 못 쓰셨어도 괜찮아요. 며칠 더 걸리셔도 돼요. 그 며칠이 글에 들어가요. 상대 아이와 부모님을 부모로서 어떻게 마주할지 정리하는 시간이거든요.
우리 아이는 누구보다 부모가 잘 아세요. 그 아시는 걸 사과문 안에 담는 일만 도와드려요. 며칠이 더 지나도 첫 줄이 안 떨어지시면, 그때 한 번 전화 주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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