직장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평일 저녁. 식탁에 편지지 한 묶음을 펴 두시고, 옆에는 회사 메모지가 두 장 — 거기에 한 줄씩 쓰셨다가 지우신 흔적이 보입니다. "OO 씨께" 한 줄을 쓰셨다가, "안녕하세요"로 바꾸셨다가,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시기를 며칠째.
본인 실수로 동료분께 손해가 갔고, 메일이나 메시지가 아니라 직접 자필로 한 장 써서 건네 드리고 싶으신 마음.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진심이 들어가 있습니다. 그런데 펜이 안 나갑니다.

직장에서 사과문을 자필로 쓰실 때, 막히는 지점은 보통 세 군데입니다. 첫 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, 본인 실수를 어디까지 풀어 써야 할지, 분량은 어디서 멈춰야 할지. 이 세 가지가 머릿속에서 동시에 돌아가니까 한 줄도 안 나갑니다.
먼저 첫 줄. "OO 씨께, 죄송합니다"로 시작하지 마세요. 받는 분 입장에서는 그 한 줄이 너무 가볍게 읽힙니다. 첫 줄은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그 일 한 줄로 시작하세요. "지난주 화요일 OO 건으로 OO 씨께 부담을 드린 일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." 이 한 줄이 들어가면, 받는 분이 두 번째 줄부터 마음을 열고 읽으십니다.
본인 실수를 풀어 쓰실 때 가장 많이 헛도시는 게 사정 설명입니다. 그날 본인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,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풀어 쓰시는 순간 변명처럼 읽힙니다. 사정을 빼고, 본인이 그 일을 지금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짧게 쓰세요. 두세 줄이면 충분합니다.
40대 초반 한 분이 평일 밤늦은 시간에 메시지를 주셨습니다. 회사 프로젝트 자료를 옮기시다가 본인 부주의로 데이터가 일부 사라졌고, 그 일로 동료 한 분이 주말 이틀을 출근해서 복구하셨다고 하셨어요. 본인이 먼저 쓰신 초안을 보내 주셨는데, 두 장이 넘는 길이에 "그날 마감이 겹쳤고, 다른 회의가 있어서"라는 흐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. 그 부분이 변명처럼 읽힌다는 걸 본인도 알고 계셔서 며칠째 못 보내시던 거였어요. 다음 날 오전 통화에서 그 동료분이 주말에 출근하신 시간을 한 줄로 짚어 드렸고, 본인이 그 시간을 인지하고 있다는 한 단락으로 글을 다시 시작하시도록 위치를 조정해 드렸습니다. 한 장 안쪽으로 정리되셨고, 자필로 옮기셔서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건네 드렸다고 들었어요.

또 한 분, 50대 초반 직장에서 본인이 담당하신 일이 잘못되어 동료분께 책임이 넘어간 일로 사과문을 자필로 쓰고 계셨던 분도 있었습니다. 토요일 오후에 전화를 주셨고, 한참 통화하면서 본인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를 천천히 들었어요. 본인 잘못이 어디서부터였는지를 정리하시고 나니, 자필로 옮기실 때 첫 줄이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하셨습니다. 일요일 오전 초안을 다시 봐 드렸고, 마지막 한 줄에서 "앞으로 어떻게 일을 처리하겠다"는 행동 한 가지를 더하셨어요. A4 한 장 안에서 마무리되셨습니다.
직장 사과문 분량은 A4 한 장 안쪽이 좋습니다. 한 장 반을 넘기면 사정 설명이 새어 들어가거나, 같은 말이 반복됩니다. 자필로 쓰시면 글자 크기에 따라 한 장이 자연스럽게 차요. 그 안에 첫 줄(인지), 본인이 그 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(두세 줄), 받는 분이 들이신 시간이나 노력에 대한 인정 한 단락, 앞으로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지 행동 한 가지. 이 네 가지가 들어가면 됩니다.
자필로 쓰시는 게 메일보다 무게가 있어요. 손으로 쓰시면 시간이 들고, 그 시간이 받는 분께 전달됩니다. 글씨가 평소대로면 됩니다. 평소에 자필을 잘 안 쓰셨다면 워드로 먼저 정리하시고, 그 다음에 옮겨 쓰시는 방법도 있어요.

빼고 가셔야 할 것도 짚어 드릴게요. "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습니다"를 두 번 세 번 반복하지 마세요. 한 번이면 됩니다. "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" 같은 문장도 빼세요. 용서를 청하는 글이 아니라, 본인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전하는 글입니다. 그리고 본인 사정 — 그날 다른 일이 겹쳤다는 이야기, 본인이 그동안 얼마나 바빴는지 — 이 모두 빼세요.
지금 식탁에 편지지를 펴 두고 첫 줄에서 멈춰 계신다면, "OO 씨께"부터 쓰지 마시고 그 일이 일어난 날짜와 사건 한 줄을 먼저 써 보세요. 그 한 줄이 시작점입니다. 호명은 그 한 줄 위에 마지막에 올리시면 돼요.

저희가 매일 받는 통화가 이런 분들 이야기입니다. 직장에서 본인 실수로 동료분께 손해를 입히신 분들, 메일이 아니라 자필로 직접 건네 드리고 싶은데 첫 줄이 안 나오시는 분들. 옆에서 그날 일을 같이 짚어 드리고, 변명이 새어 들어갈 부분을 짚어 드립니다. 자필로 옮기시기 편하게 한 장 안쪽으로 정리해 드려요. 통화 한 번이면 첫 줄이 어디서 시작될지 보이실 거예요.
의뢰 후 직접 보내주신 메시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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